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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공공의료


공공의료를 묻다
답하신 분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 교실 겸임교수 문정주 (2014년 6월)



1. 최근 ‘공공의료’라는 말을 언론에서 자주 접하게 됩니다. 공공의료의 기본적인 개념은 무엇인가요? 그렇다면 일반인이 흔히 접하는 의료는 영리 의료인가요?

- ‘공공의료’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권리로서 누릴 수 있도록 보장된 의료서비스입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란 남녀노소, 가난한 사람, 장애인, 오벽지에 사는 사람, 외국인 등 모두를 말합니다. 넓은 의미의 공공의료는 건강권을 보장하는 의료제도 전반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좁게 말하면 수익을 좇는 사립병원이 기피하는 오벽지 주민을 위한 의료, 가난한 사람이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있는 의료, 수익성은 없지만 필수적인 의료(결핵 등)라고 할 수 있고요. 가장 좁은 의미로는 공공병원이 제공하는 의료만을 뜻하기도 합니다.

- 일반인이 흔히 접하는 의료기관은 사립병의원이 많지만 이것이 모두 영리 의료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우리나라 모든 병원은 국민건강보험제도 당연지정이 되어 있고 건강보험제도의 규칙 대부분이 국민의 공익을 보호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치명적 약점이 있는데, 비급여 진료를 넓게 허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때문에 건강보험이 있는데도 환자가 부담하는 돈이 많게 됩니다. 그래도 우리나라 의료가 공익적 성격을 유지하는 데에 건강보험제도가 큰 역할을 합니다. 두 번째, 규모가 큰 병원 대부분이 법률적으로 ‘비영리 의료법인’입니다. ‘비영리’라는 것은 병원이 병원사업을 통해 수익이 나면 그 돈을 병원 운영에만 사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번 돈을 인건비, 장비 구입비, 시설 유지 및 확장비, 저소득층 진료 지원비 등 병원 운영 안에서만 써야 합니다.

- 문제는, 법적으로 비영리 기관이면서도 실제 현장에서는 적지 않은 예에서 영리적 이윤 추구 행태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건강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비싼 검사나 비싼 치료법이 좋은 거라는 생각,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는 세태 등에 편승해서 과잉 검사, 과잉 수술, 피부 미용, 미용성형수술 등이 만연하는 것이 그 사례가 되겠지요. 한편 적자를 이유로 진료 분야를 축소하는 것도 영리추구입니다. 상당한 규모의 병원이면서도 응급실을 운영하지 않거나, 산부인과는 있어도 분만은 하지 않거나, 소아 입원진료는 하지 않는 등이 사례입니다. 그러나 해당 의료서비스가 영리적인지 아닌지 구별하기도 어려우므로 안타깝게도 상당수 ‘일반인’이 영리적 의료를 ‘흔히 접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정부, 시, 군, 구에서 설립한 병원만 공공의료기관이라고 부를 수 있나요?

- 그렇습니다.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 국가, 지방자치단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공단체가 설립한 기관만 공공보건의료기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 법률은 공공보건의료‘수행기관’이라는 확장된 개념을 추가로 제시합니다. 여기에는 공공병원 외에 정부가 지정한 병원, 즉, 의료 취약지역 거점의료기관, 공공전문진료센터 등이 포함됩니다.
공공의료기관의 법률적 정의는 이렇게 좁은 의미입니다. 아마 이러한 법률적 정의에 공감하기 어려우신 분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사회적 공익 및 의료의 공공성에 대해 더 연구하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서 공공의료기관의 기준과 정의를 새롭게 한다면, 공립병원이어도 공공의료기관이라 할 수 없는 곳이 있을 것이고 사립병원이어도 좋은 공공의료기관이라 할 수 있는 곳이 있을 것입니다. 아직은 이런 기준이 없고 국공립병원만 공공의료기관이라 부릅니다.



3. 공공기관이라도 공적 사명감이 투철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사립기관이라도 공적 기능에 충실한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동네 의원 중에는 지역사회에 뿌리내려 공공보건의료 역할을 맡고 있는 병원도 많은데요. ‘공공의료’ 논쟁에서 ‘지역 주치의’가 중요할 텐데 교수님 의견은 어떻습니까?

- 공공기관이 아니더라도 지역사회에서 훌륭한 역할을 하는 곳이 있습니다. 동네에서 흔히 개인병원이라 부르는 의원은 전부 사립 기관인데, 이 중에는 주민의 주치의 역할을 하는 의원이 많지요. 이 분들의 수고 덕분에 우리나라 의료가 이만큼이라도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앞에서 쓴 대로 공공의료가 어떤 사람이든 이용할 수 있는 의료, 즉, 건강권을 보장하는 의료라고 한다면 이를 사회에 실현하기 위한 기본 토대가 바로 의원(일차 의료)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남녀노소, 사는 곳에서 가깝고, 경제적 제한 없이, 자신을 잘 아는 의료인을 통하여 쉽게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어야 건강권 보장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생활 현장 곳곳에 존재하는 작은 의원급 기관이 가장 잘 담당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공공의료 논의에서 공공종합병원이 담당하는 서비스를 주로 대상으로 했다면 앞으로는 의원급 일차 의료를 포함하여 논의 범위를 넓혀야 할 것입니다.



4. 저희 기관에도 노인의료복지시설이 있습니다. 운영방식을 보면 충분히 공공성을 띄고 있다고 보이는데요. 공공병원이 아니더라도 공공성을 띄고 있는 의료복지기관의 예가 무엇일까요?

- 병원급 사립기관 중에 뛰어난 공공성을 보이는 곳은 이사회 등을 사회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하고,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운영방식을 지키고, 가난한 환자를 포용하는 것을 기관의 주요 목표로 삼는 등 공익을 뚜렷이 실천하는 특성을 보입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월곡동 성가복지병원, 원진재단이 설립한 녹색병원입니다. 인천 햇살요양병원도 이러한 운영을 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5. 최근 병원 영리자회사 허용 등 의료상업화 논란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의료의 공공성이 강조되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사회 안에서 모든 사람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최근 세월호 사건에서 직접 피해를 입지 않았어도 그 일이 마치 자기 가족에게 일어난 일인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건 그 일을 직접 겪는 사람들과 내가 무관하지 않다는 것, 내가 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배를 탈 수도 있었다는 것, 우리 아이가 바로 그 배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었다는 것, 저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이 바로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 즉, 누구나 안전한 사회라야 나도 안전합니다. 의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쉽게 의료를 적절히 이용할 수 있는 사회라야 나도 의료를 이용하고 건강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회는 어떤 사람이든 권리로서 이용할 수 있는 의료, 건강권을 보장하는 의료제도를 갖추어야 합니다. 뒤집어 보면 제도적 의료는 반드시 공공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정부가 사회적 합의도 거치지 않고 밀어 붙이고 있는 의료상업화, 영리화 정책이 현실화되면 병원은 돈벌이 기관(법인)이 관리하는 여러 사업체 중 하나로 전락합니다. 호텔, 약품 판매, 식음료 판매, 부동산 임대 업체 등을 거느린 법인으로서는 산하 사업체 중에 제일 돈벌이가 시원치 않고 골치 아픈 곳이 병원일 수도 있습니다. 회사 경영자 입장에서는 그걸 그냥 놔 둘 수 없을 테니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료비를 비싸게 하고, 돈벌이가 되는 진료만 하려는 행태가 지금보다 더 심해질 것입니다. 병원이 이런 곳이 되면 사회는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위험하게 되어 사람들이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힘들게 됩니다.



6. 의료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일반인이 알아야 될 사항이나 할 일 있다면 무엇인가요?

- 먼저 건강권을 시민의 권리로 인식하여야 합니다. 정치가 정치인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이 투표로 결정하지요. 교육에서도 교육감을 국민이 뽑고 학부모가 학교운영위에 참여하지요. 의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건강을 위한 일, 우리 모두의 건강권을 위한 일은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두 번째, 시민사회 활동에 참여하여야 합니다. 동네의 일차 의료 제도를 잘 만드는 데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세 번째, 의사 표현이 중요합니다. 정부가 의료 영리화 정책을 포기하고 의료 제도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도록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지역이 선출한 의회 의원, 지방자치단체장, 국회의원에게 시민의 뜻을 알리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 햇살 소식지를 위하여 자세한 설명을 해 주신 문정주 교수님은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전주예수병원 지역사회보건과, 연천군 보건의료원장, 보건사회진흥원 연구원,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지원팀장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계십니다. 거의 30년 동안 공공의료에 관한 연구와 사업을 진행해 오신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