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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내 국적은 일본” 이승만 美 체류 시절 자필 국적 표기 충격

몇 년 전 기사이지만, 엊그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하면서 했다는 ‘건국 68돌’가 이승만을 수반으로 하는 단독 정부를 수립한 1948년을 기점으로 삼는다는 것은 역산해보면 초등학생라도 알 수 있는 것인데, 다른 건 다 떠나서 이런 사실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상 ‘이승만 국부론’인데 좀 쪽팔리지 않나?
게다가 이승만은 독립협회 활동을 하던 인물(이용구도 그랬다)인데 친일 단체 일진회 연관성이 제기되고 미국 체류 시절 주로 한 활동이 미 국무성 사무실을 방문해서 미국(카스라-태프트 혹은 태프트-카스라 밀약으로 일본이 한반도를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데 동의한 나라)에 ‘엉뚱한’ 독립 청원하는 것이었다고 하는데 이걸 국내는 물론 중국이나 러시아 등지에서 풍찬노숙하면서 당시 막강했던 ‘강도 일본’ 를 상대로 독립 운동한 지사와 무명 용사들의 일생과 비교해보면 어떤 그림이 그려지나?
1948년 건국절 논란은 당대 민족적 과제가 무엇이었던가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인데,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자 마자 남북이 분단되고 세계 열강의 각축이 진행되는 조건에서 남북 양쪽에 반쪽 단일 정부가 들어서고 이어서 동족 상잔 전쟁이 벌어진 것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달려 있다.

“내 국적은 일본” 이승만 美 체류 시절 자필 국적 표기 충격
(뉴욕=뉴시스) | 노창현 특파원 robin@newsis.com | 등록 일시 2013-10-05 10: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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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것은 이 전 대통령이 자신의 국적을 ‘일본’(Japan)으로 기재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강제 합병으로 식민지 국민으로 전락한 시점이기는 하지만 하와이 등 미국에서 외교 중심의 독립 운동을 펼친 그가 신상 정보난에 국적을 일본으로 밝힌 것은 적잖이 흥미롭다.

1차 대전 징집 자원을 파악하기 위해 작성된 징집 카드는 당시 미국에 거주하는 18~45세 사이의 남성을 대상으로 했다. 시민권자는 물론 미국에 거주하는 모든 외국 남성들을 포함, 미 전역에서 약 2,400만 명이 카드에 자신의 개인정보를 수록했다. 현재 이 징집 카드는 ‘셀렉티브 서비스(Selective Service)’란 이름으로 만 18~25세 남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가 국적을 일본으로 표기한 것은 식민지 백성으로 전락한 시점에서 아시아의 열강인 일본의 국민으로 신상 정보를 기록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듬해 상해 임시 정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등 해외 독립 운동의 중심에 있던 그가 미국의 공문서에 ‘일본인’이라고 밝힌 것은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논란거리인 그의 ‘친일 성향’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러일 전쟁 막바지였던 1905년 8월 4일, 이승만은 하와이의 윤병구 목사와 함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을 면담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이승만이 고종 밀사로 파견된 것이라는 설이 제기됐지만 당시 ‘뉴욕 헤럴드 트리뷴’ 등 미국 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승만과 윤병구는 “우리는 황제의 대표자가 아니라 ‘일진회’라는 단체의 대표자”라면서 “황제는 한국인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대한 제국과 고종을 적극 부정했다. 1904년 결성된 일진회는 이듬해 11월 조선의 외교권을 일본에 넘긴 을사 늑약을 적극 찬성하는 등 대중적 영향력을 가진 친일 단체로 성장했다.

뉴욕 헤럴드 트리뷴은 “러시아 사람들은 줄곧 적이었고, 우리는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이기고 있는 것에 기뻐한다”는 윤병구의 말과 함께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서 이들은 일본을 주인으로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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